| 역전의 용사, (예)영관장교연합회 4·3사건 간담회 가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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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에서는 2009년 3월 5일부터 7일까지 제주 4·3사건 당시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회원 등 회원 대표 64명이 제주 4·3평화 기념관 등을 관람하고 공통된 의견일치로 절차를 거쳐 우리의 입장을 밝히며 건의하니 정부당국과 관련위원회 등에서는 성의 있는 조치 있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위 내용은 지난달 20일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 연합회(이하 영관장교 연합회, 회장 권오강)가 제주 4·3평화 기념관을 방문하고 이 연합회 명의로 낸 성명서 서 두부문이다.
영관장교 연합회는 이 성명에서 '세계백과대사전'을 인용, "제주도 폭동사건은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폭도의 폭동사건"임을 강조하고 "당시 제주 4·3사건 진압작전 참가자들의 증언과 주변 인식들도 대략 그러하였기에 우리들의 머릿속엔 제주 4·3사건은 공산주의 지령을 받은 무장폭도들의 폭동사건이라고 인식되어 왔으며, 많은 국민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 내용은 너무도 판이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며 "기념관 내의 일부 편향된 전시, 기록물을 시정 보완해 재조명토록 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목숨바쳐 싸워온 우리들은 우국충정으로 제주 4·3평화기념관을 현 상태로 국민과 학생들, 외국인들에게 계속 관람케 함은 일부 국민들의 분노와 갈등 야기는 물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국가안보에 상당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아 일부 편향적인 기념관의 내용물 전시 관람을 제고했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노병들의 심회를 표현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1948년 4월 제주 4·3사건이 발생하자 국방경비대 소속으로 있다 제주도로 이동해 공비 토벌작전에 참가하고 6·25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참전용사를 비롯한 영관장교 연합회 회원 64명이 제주 4·3평화기념관을 방문하고 돌아와 당시 몸으로 겪고 체험했던 사실과 진열된 기록물 중 일부 내용들이 편향되게 전시, 기술된 데 대해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며 작성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제주4·3사건 당시 본인들이 겪었던 사실과 기념관내에 전시된 내용의 잘못을 지적하고 기념관을 방문하고 느낀 소감 등을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 놓고 기자가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가졌다. 서울 뚝섬 영관장교 연합회 사무실에서 가진 간담회에는 권오강 영관장교 연합회장, 김태윤 수석부회장, 그리고 유순근 공군, 박우식 해병대부회장 등 회장단과 4·3사건 당시 진압작전에 참가한 1연대 소속이던 이상연 원로와 5연대 소속 서갑성 원로가 참석했다. 이들 원로와 참석자들은 간담회에서 제주 4·3사건은 일부 양민의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지만 폭도에 대한 국가의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한 군·경에 대해 학살자로 묘사하는 등 외곡되고 실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간 점이 많으며, 특히 잘못된 자료에 의해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하고 보상하게 한 것은 너무 가볍고 서두른 감이 있다고 밝히고 왜곡되고 오인된 자료와 내용으로 전시된 제주4·3기념관의 견학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1948년 4·3 당시에 현지에서 토벌작전에 참가하신 원로 분도 계시고 현지에서 기념관을 직접 보고 오시기도 하셨는데 당시 상황 등 제주4·3사건을 보는 관점에 대해 말씀을 나눴으면 합니다. 권오강 회장 : 우리 영관장교연합회가 제주도 4·3평화공원을 가게 된 것은 원로와 중진들이 계실 때 가야지 시간이 더 가게 되면 힘이 약해서 못 가게 된다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또 현장에 가서도 오늘 참석하신 두분 원로가 인터뷰를 갖기도 했습니다만 평화공원과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참 가슴이 막막하고 답답해지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연 원로 : 제주에서 반란이 나자 당시 1연대가 용산에 있다가 11연대가 서귀포에서 창설되면서 가게 되었다. 당시를 돌아보면 김달삼이 제주도 남노당 인민위원회 위원장이면서 유격대 사령관이었다. 그것을 남로당 인민위원회 위원장인 김달삼이 꺼내 각 부락에 무기를 나눠주면서 유격대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4월3일 새벽 2시에 봉화가 오르면 제주 각 파출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해 각 부락의 이장과 반장을 포함해 다 살해하기로 모의를 했다.
서갑성 원로 :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은 아니고 내가 속한 5연대 2대대는 진해에 주둔하고 있었다. 거기서 6중대 선임하사를 하다 2대대가 제주 토벌을 위해서 출동하게 됨에 따라 현지에 가서 직접 전투보다 지원임무를 수행했다. 그 때 당시는 미군정 치하였는데 미군정에서는 직접 토벌 명령이 없었다. 문제는 김달삼을 위시한 걔들(공비)들이 사건을 일으켰고 그래서 가담한 게 9연대다. 배속형식이었는데, 연대장은 김익렬 중령이었다. 김익렬 연대장이 김달삼을 만나서 요구조건을 듣고 합의를 봤다고 얘기를 들었다. 이는 직접 연대장으로부터 들은 것은 아니고 연대장과 같이 있던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당시 김달삼의 요구사항은 단순했다고 한다. 그런데 원래 김달삼은 일제시대 학병으로 일본군에 갔다온 사람으로 대단히 두뇌 회전이 빠르고 교활한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김달삼이 요구한 내용은 그 때 한라산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이 4천여 명인데 이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요구를 했고 군정 편에서도 이 요구조건을 들어주기로 하고 김달삼도 투항하는 시기를 알려주기로 협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아군은 공비와 양민을 분리하기 위한 작전을 벌이기 시작해 했으나 작전 과정에서 상호 오인사건이 발생하고 김달삼도 군대의 선무공작으로 조직의 이탈과 분열이 일어나게 됨에 따라 남로당 총책인 박헌영으로부터의 책임추궁을 받을 것을 염려해 결국 남로당 당원이자 9연대 중대장인 문상길을 통해 암살지령을 내려 김익렬 연대장이 보직해임 된 이후 연대장으로 취임한 박진경 중령을 암살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박진경 중령이 연대장 취임식장에서 "1백 명의 폭도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한 말이다. 그만큼 양민의 생명을 중시 여겼다. 또 이 말과 함께 "3개월만 박진경 연대장이 살아서 부대를 지휘했더라면 평화롭게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채명신 장군도 증언하고 있다.
이상연 원로 : 아군의 선무공작으로 산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당시 나는 제주시 조림면 지역에서 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한라산으로 들어가는 보급루트인데 아군 쪽에서는 폭도나 그 가족이든 양민이든 모두 수용해서 살리라고 강력하게 지시하고 또 이들을 수용할 수용소를 만들어서 수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달삼은 이를 막기 위해 폭도들인 유격대를 투입시켜 수용소를 습격해 이들 투항한 사람들을 죽이고 했다. 권오강 회장 : 4·3평화공원을 가서 보면 군·경에 의해 죽었다는 사망자 명단이 나온다. 그 명단을 보면서 현지 관계자에게 평화공원을 만든 취지를 물어보니 제주도 사람끼리 좌우로 나뉘어 다툼으로서 이를 합의적으로 해서 서로 오해를 풀고 평화롭게 지내자 하는 목적에서 조성했다고 한다. 그 취지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명단에 나오는 1만 3천5백64명이 전부 군인 경찰이 사살했다고 나오더라. 그럼 유격대가 4월 3일 아무런 잘못이 없는 면장과 부면장, 그의 가족과 부락의 이장, 반장까지 죽은 것은 왜 포함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신고를 받아서 만들었는데 신고를 하지 않아서 빠졌다고 말했다. 이것은 의문이 간다. 경찰, 군인의(희생자)명단도 없다. 이것부터가 왜곡되었다고 본다. 엉뚱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잘못이다. 서갑성 원로 : 문제는 폭도 짓을 하다 죽은 사람도 양민으로 죽었다고 해서 문제다. 각 신문사에서 당시에 폭도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보도하기도 했다. 권오강 회장 : 공원 책임자에게도 말을 했다. 앞에서도 말을 했지만 공원의 설치 목적은 좋다. 화해와 상생이다. 현지 기념관 조형물이나 표기 기록물이 군인과 경찰은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그 임무고, 부여된 임무를 수행한 것인데, 군·경을 제주 양민을 죽인 학살자나 집단 처형자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원래의 목적인 국민의 화해와 상생은 없다고 본다. 이것을 보고 그 일가 친척들이 공권력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다 같은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여론의 70, 80%가 현 상태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국가 전체를 보는 사람은 반대다. 전시관 안에 있는 내용은 다시 해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김태윤 수석부회장 : 전시관을 보면 입구에서부터 접근하는데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단면에 대한 배경 설명이 안되어 있다. 제주 4·3이 왜 일어났는지 정치 정세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5·10선거를 방해하기 위해서 남로당이 정치 거부운동을 하자 해서 한 것이 4·3사건이다. 당시 제주도는 행정체제가 강화되지 못해서 제주 인민위원회 구성이 용이했다. 김달삼이 중심이 돼서 이 때부터 정부가 수립된 1953년까지 공비들이 준동했고 그 가운데 일어난 사고다. 이런 배경관계를 충분히 설명하고 해야한다. 정부에 대항해서 폭력과 무력을 동원해 반항한다면 분명히 폭도다. 그런데도 이들을 민주화운동을 한 애국자로 몰고 그것을 막은 국가의 공권력인 군·경을 폭도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며 고쳐야한다. 한마디로 비극이다. 이 배경을 알고 보면 공비도 있고 또 공비를 향해 쏜 총이 양민을 희생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위령탑과 기념관 다 좋은데 중요한 것은 기본을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시정해야 한다. 사진 기록을 보면 일반인은 사실로 아는데 날자와 시간이 명기가 안 돼 있어 오인되고 왜곡될 수도 잇다. 명확한 사진으로 진실 되게 해놓아야 한다. 유순근 공군 부회장 : 피해 당사자들이 공정하지 않았다. 공비도 있고 행정직이나 경찰군인도 많이 죽었지만 포함되지 않았다. 4·3사건은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전체가 정부와 군·경의 잘못으로 모는 것은 공평치 않다. 노무현 정부 때 사과를 하고 보상했는데 너무 일방적인 자료에 의해 대통령이 가볍게 사과한 것으로 본다. 제주도는 지역특성상 사람이 함부로 빠져 나올 수 없다. 배타적 반발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심리적 갈등은 현재도 존재한다. 박우식 해병부회장 : 상생 화해무드를 위해 기념관을 만들었는데 일방적으로 함으로서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가서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남로당 행적과 무장 유격대의 상황은 누락되었다. 경찰과 군은 학살자로 묘사하고 상대방은 미화해서 포장했다. 전시관은 4관까지 되어 있는데 조형물은 웅장하고 공원의 12만평 부지는 국립묘지보다 더 웅장하다. 군과 경찰이 억울하게 학살자로 둔갑돼버렸는데 명예를 회복해야한다. 앞으로 외국 사람들 중국이나 일본인들 많이 오게 될 것이다. 후손들에게 명명백백하게 규명되기를 원한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생존자를 물색해서 조사위를 다시 구성하고 왜곡된 역사를 수정해 원점에서부터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해야 한다. 이상연 원로 : 증언에 나오는 사람들이 당시 10살, 13세살 먹은 나이의 사람들이다. 어떻게 알겠는가? 당시 우리도 누가 폭도고 양민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특히 제주도의 말은 고유한 말이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아군인지 적인지 어찌 알겠느냐. 그걸 녹음해서 증언이라고 하고 있다. 서갑성 원로 : 총제적으로 얘기하면 제주도 4·3사건과 관련한 기념관은 내 생각에는 현재 상황에서는 관람이 중지되어야한다고 본다. 위조되어 있고 위반되어 잇다. 비근한 예로 4·3당시 제주도는 계엄하다. 계엄령 하에서 군법회의서 형을 주는 것은 당연하고 국법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불법으로 양민을 사살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제주도 4·3 기념관은 관람을 중지하고 재조명해서 정확한 역사가 확인된 다음에 진실이 수록되어야한다. 우리 후속들이 자라나면서 역사교육에 참고가 되도록 유익하게되어야 한다. 권오강 회장 : 두 분이 실제 경험자이시기 때문에 증거가 되고자 녹음도 하였다. 이번 제주도 현지를 돌아보고 돌아와서 참가자들이 모두 소견을 써 모았다. 증언한 내용이 당시 내용과 너무 차이가 난 것을 입증하였다. 이번에 한 자료들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책을 만들고 관련 내용을 250여개 국가기관과 향군 등 단체와 신문 방송사 등에도 보낼 예정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