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은 세계적화를 노리는 공산군의 침략을 한반도에서 저지함으로써 자유를 수호한 전쟁..유비무환의 총력안보태세 강화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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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전쟁사학자 휄론 박사는 그의 저서「한계선을 그으면서(Drawing the Line)」에서 6·25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6·25전쟁은 비록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세계인류의 평화와자유를 위해 크게 공헌한 전쟁이었다. 한반도에서 야기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와의 전쟁에서 만약에 UN군과 한국군이 공산주의 진영의 무력공격을 저지하지 못했다면 한반도는 물론이고 도미노현상에 의해서 일본을 비롯한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한반도에서 UN군과 한국군이 공산군의 침략을 저지했기 때문에 40년이 지난 후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붕괴되어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된 원인(遠因)이 되었다. 그러므로 6·25전쟁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와의 전쟁에서 자유민주진영이 승리함으로써 자유를 지킨 전쟁이었다" 이렇게 볼 때 6·25전쟁은 휄론박사가 정의한대로 세계적화를 노리는 공산군의 침략을 한반도에서 저지함으로써 자유를 수호한 전쟁이었음이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한편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은 그의 회고록에서 "한국군은 6·25전쟁을 통하여 자유의 전사(戰士)라는 것을 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나아가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장병들이 단결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다는 실예를 남겨주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전면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처참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멎은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지 3년만에 아시아의 한반도에서 또 다시 발발한 전쟁은 전 세계 인류를 공포와 경악의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돌이켜 보면 6·25전쟁은 우리민족에 있어서는 더할 수 없는 비극이며 피의 역사였다. 아름답던 3천리 금수강산이 초토화되었고 수십만의 무고한 인명이 졸지에 죽어갔다. 그 상흔은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맺혀져 있다. 아무런 대비가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당한 우리 국군은 적에 비해 모든면에서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여 사투하였다. 우리 국군용사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소련제 신형탱크의 출현으로 방어선이 맥없이 무너지고 조국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하게 되자 남진하는 적의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포탄과 화염병, 그리고 수류탄으로 육탄 공격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졌다.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다행스럽게도 UN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을 침략자로 낙인 찍고 미국을 주도로 한 16개 자유 우방국가들이 참전하여 우리 국군과 함게 공산침략자를 이 땅에서 몰아내었다. 수도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고 낙동강전선까지 후퇴하게 된 UN군과 한국군은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만회하여 반격작전에 들어가 압록강 두만강까지 이르러 통일의 문턱에 이르렀으나 120만에 달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통일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쌍방은 막대한 희생을 치루고 휴전협정으로 종결되었지만 우리가 끝내 공산군의 침략을 분쇄함으로써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한 자유수호전쟁이었다. 3년간이나 계속된 6·25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우리는 6·25전쟁이 남긴 귀중한 교훈을 귀감으로 하여 또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강구해야 한다. 첫째는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대해 속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6·25남침전쟁에 대한 그들의 남침기도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측에 계속적인 위장평화광세를 전개하였으며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이목을 회피하기 위한 각종 수단을 총동원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상 그들은 항시 화전양면의 전략과 위장평화공세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그들의 속임수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국력의 배양과 국론통일이다. 우리가 그들과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북한보다 월등한 국력과 국론통일 면에서 현격하게 앞섬으로써 전쟁의 억제력을 갖게 된다. 힘이 없으면 우리는 그들에게 당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월등하게 건설하고 국가전략과 국민의 안보의지를 제고시킴으로써 감히 그들이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셋째는 유비무환의 교훈이다. 6·25전쟁 직전 우리는 각종정보에 의해 어느 정도 북한군의 남침준비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음으로써 화를 자초하였다. 평상시에 전쟁에 대비하여 완벽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면 적은 감히 공격해 오지 못할 것이며 또한 국가적인 환란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는 국민의 총력안보태세를 강화해야한다. 국민의 총력안보태세란 군사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것이며 특히 국민의 안보의식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25전쟁 직전 정치적으로는 5·10총선에 의해서 이승만 정권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는 8·15광복을 맞은 지 얼마 안된 상황 속에서 빈곤과 경제적인 혼란으로 시민의 생활고가 극한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이념대립으로 인한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전쟁위기설로 인해 민심이 극도로 흉흉함으로써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불안정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불안정 상황 속에서 국민의 안보의식은 해이하게 되고 국가안보보다 개인의 생존을 위해 의식이 더욱 심화됨으로써 6·25전쟁의 참화를 자초한 것이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전쟁의 실패요인을 예의 평가 분석하고 예상되는 제2의 6·25전쟁에서 그들의 실패를 또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건설하고 우리 서울에 근접한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시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6·25전쟁의 주 실패원인을 미공군의 막강한 제공권 장악에 있었다고 봄으로써 공군력 건설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어서 북한은 우리의 비대칭 무기이며 전략무기인 핵무기를 비롯한 생화학무기와 그의 운반수단인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여 단거리 미사일인 스크드미사일과 중거리 미사일인 노동미사일 그리고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미사일까지 개발 보유하게 됨으로써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서부지역까지 사정권에 둠으로써 군사적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동서냉전 이후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게 되자 국제사회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존전략으로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이제 핵무기 보유국 선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일은 북한공산집단이 8·15해방 이후 계속 추구해온 대남적화전략에는 하등의 변화가 없으며 결정적 시기만을 노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면 북한이 2012년을 목표로 군사력건설을 주축으로한 강성대국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그들의 군사적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의 대응전략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는 북한이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북한이 단 한 개의 핵무기를 가졌다 하더라도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게 되고 윌의 국가안전보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훼손된 한미동맹관계를 원상복구하고 군사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작전능력 향상을 도모하기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체제(MD)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국제적인 관심사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훈련(PSI)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넷째는 우리 국군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단독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할 때까지 주한미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과 한미연합사 해체를 무기연기 해야만 한다. 그것은 북한이 공교롭게도 2012년에 군사력 중심의 강성대국 건설이 완성되는 해에 우리가 한반도에서 전쟁억제 기능을 수행해온 주한미군의 전시 작전통제권과 연합사를 해체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적 앞에서 무장해제 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konas) |










